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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세상 풍조 속에서 보존되는 언약의 혈통 (창10:21-31)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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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풍조 속에서 보존되는 언약의 혈통 (창10:21-31) 창세기를 통해서 하나님의 관심이 어디로 가는가를 분명히 알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누구를 기억하시는가? 오늘 창세기 10장을 보니까 인류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구원 역사를 어떻게 이루어 가시는가를 오늘 분명히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창세기 10장은 바로 영적인 내비게이션, 영적인 지도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살기 위해서, 그리고 끊임없이 자기 이름을 높이기 위해서 흩어지고 그럽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혼란 속에서도 언약의 사람들을 주목하심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가 붙들어야 할 언약의 정체성을 확인하고자 합니다. 오늘 읽은 말씀 가운데 특별히 21절에 보면요, 셈에게서도 자손이 태어났다고 말씀하고 있고요. 그는 에벨 자손의 조상이었고 야벳의 형이었다 그렇게 말씀합니다. 이 셈은 에벨 온 자손의 조상이고 그에게도 자녀가 출생했다고 했지만, 가만히 보면요. 그 셈의 계보 중에 4대가 바로 에벨인데, 셈의 계보 중 4대손인 에벨은 히브리 민족의 직접적인 기원이 되는 인물입니다. 왜냐하면 그 에벨이란 뜻이 ‘건너오다’라는 뜻을 가진 ‘아바르’에서 유래되기 때문이죠. 셈족 후손들 가운데서 그중에 또 언약이 강하고 믿음 있는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은 계속 언약의 계보를 이어가는데, 그 4대손 에벨이 ‘건너오다’라는 뜻의 이름을 갖고 있는 것은 바로 세상의 가치관과 타락한 문화를 등지고 하나님의 약속을 향해서 유프라테스 강을 건너온 구별된 자임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을 히브리인들이라고 하는데 그 기원이 바로 여기에서 나왔다고 학자들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인들은 건너온 자이고, 건너온 자의 그 신앙을 갖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가 있습니다. 세상 사람은 우리에게 세상에 동화되는 것이 지혜라며 동화되라고 유혹합니다. 그러나 분명히 성도는 세상의 풍조를 거슬러서 건너온 자, 구별된 자입니다. 우리는 창세전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분명히 선택받은 하나님의 소유임을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소유가 된 자는 구별된 자 아닙니까? 그래서 구별된 자의 정체성을 갖고 살아가야 됩니다. 로마서 12장 2절에 보니까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한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창세기 10장은 11장과 같이 같은 맥락에서 봐야 됩니다. 10장과 11장을 구별하면 안 되고 같은 세대 속에서 일어난 사건이기 때문에 11장 전반부까지 이어지는 오늘 말씀입니다. 그리고 4대손인 그 에벨은 아들을 낳았는데 그 이름을 벨렉이라 그랬습니다. 그 벨렉의 이름의 뜻이 무엇이냐 하니 ‘나뉨’ 또는 ‘갈라짐’의 의미가 있거든요. 25절을 보면 에벨에게서 두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그 하나의 이름을 벨렉이라 그랬고 “그의 시대에 땅이 나뉘었다” 그렇게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개역성경에 보니까 “에벨은 두 아들을 낳고 하나의 이름을 벨렉이라 하였으니 그때에 세상이 나뉘었음이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에벨의 아들 그 벨렉이 태어난 그 시대에 인류가 하나님께 대적함으로 인해서 바벨탑을 쌓았던 그 시기와 아주 맞물립니다. 세상은 어떻습니까? 세상은 틈만 있으면 자기 이름을 나타내려 그러고 자기 이름을 높이잖아요. 바벨탑 사건의 그 핵심이 무엇이냐 하니 “우리 이름을 내자” 하는 자기 이름을 내는 교만이었습니다. 자기 이름을 내는 데는 문화를 발전시키는 데 굉장히 도움 됩니다. 자기가 주가 되어 최선을 다하고 열심을 다해서 문화는 발달시킵니다. 그런데 그 깊은 속에는 인간의 교만이 가득합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그들의 언어를 혼잡게 함으로 인해서 세상으로 흩어 버렸습니다. 시편 127편에 보니까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라고 하셨습니다. 결국 들어가 보면 헛되잖아요. 좋은 일은 해요, 세상에 영향을 끼쳐요. 그러나 본인들은 결국 헛되다는 그 현실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이런 흐름 가운데서 하나님의 그 노아와 셈의 후손들, 특별히 에벨을 보면서 조용한 그 언약의 흐름을 우리가 볼 수 있잖아요. 그 흩어짐 가운데서도 언약의 백성들은 끝까지 언약을 이어가는 조용함 가운데서도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그 언약의 비밀을 깨닫고 구별된 인생을 살아가는 겁니다. 나뉨, 갈라짐. 이것은 세상이 화려한 바벨탑을 쌓으면서 떠들썩할 그때에 벨렉의 계보는 세상과 갈라지고 구별해서 묵묵히 하나님의 말씀을 기다리며 신앙의 정통을 지켜갔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성도는 세상의 브랜드를 쫓아가는 그런 존재가 아니고, 하나님의 메시지를 품고 그 메시지를 따라가는 정체성 있는 존재다 그렇게 볼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매력이죠. 구원받은 성도의 매력. 겉으로는 잘 모르겠는데 보면 볼수록 매력이 있어요. 더 가보면 말씀이 그 안에 있어요, 흘러갑니다. 그 말씀의 의미가 삶을 통해서 전달이 되죠. 그러면서 “아, 저분들은 분명히 하나님의 사람이다”라고 인정을 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31절을 보니까 셈이나 함이나 야벳이 똑같이 이들이 종족과 언어와 영토와 나라에 따라 나뉘었다고 말씀했는데, “이들은 셈의 자손이니 그 족속과 언어와 지방과 나라대로였더라”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셈의 자손들도 마찬가지로 그 언어대로 다 흩어졌어요. 흩어졌는데 세상을 향한 그 하나님의 심판 속에서도 하나님은 영혼을 위한 분명한 전략적 배치를 하시는데, 셈의 자손들을 각 족속대로 다 흩어 버리셨어요. 다 흩어 버리는 이유가 뭐냐면, 이 셈의 언약의 사람들을 통해서 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계획이 불신자들에게 이 하나님의 언약이 전달되게 하는 분명한 계획이 있는 거죠. 하나님이 왜 사람들을 세상으로 흩으셨을까? 하나님의 목적은 분명히 말씀하기를 그 이유는 인류가 사방으로 퍼져서 하나님을 더듬어 찾게 하기 위해서 흩으셨다고 창세기도 그러고 사도행전에서 바울도 그런 고백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흩으신 목적이 뭐냐면 더듬어 하나님을 찾게 하기 위해서, 영어 성경에 보니까 손을 뻗쳐서 그를 찾도록 하기 위한 거예요. 손을 뻗치고 찾는 자가 누구입니까? 구원받기로 준비된 자가 있어요. 셈의 후손들, 그리고 이 언약의 백성으로 구원받기로 준비된 사람은 흩어진 가운데서, 막막한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찾아가는 거예요. 그렇게 갈급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갈급한 사람에게 셈의 후손인 말씀 가진 사역자들이 찾고 발견하고 세우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지요. 사도행전 17장 26절에 보니까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지면에 흩어 살게 하시고... 이는 사람으로 혹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하게 하려 하심이로다.” 믿음의 사람이 뭉쳐 있으면 신앙생활 하기 얼마나 좋아요, 복입니다. 그냥 같이 말씀 흐름 타기 때문에 옆에서 도와주고 세워주고 말씀 주고 이게 얼마나 복인지 몰라요. 그런데 하나님은 흩어버린 이유가 뭐냐 하니, 흩어 버리면 힘들게 하나님 믿거든요. 힘들게 하나님을 찾아요. 그런 사람 참 많습니다. 전쟁이 나고 환난이 나고 경제적 여러 가지 이유로 흩어져 사는 그 자리에 하나님의 큰 뜻이 있는데, 하나님께서 그 자리에 복음의 씨앗을 심으려고 하는 하나님의 뜻이 있는데 그 가운데서 복음을 가진 사람이 있는 거예요. 그러면 그 가진 사람을 축복하셔서 그 복음 가진 사람들이 그 현장에서 흩어진 사람들에게 복음 전하게 하신단 말이죠. 그래서 선교의 복이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인류 역사를 보면 선교사의 후대들이 다 복을 받았고 목사님들의 자녀들이 다 축복을 받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고생하는 거 같아도 결국 하나님이 교회를 세우는 주역도 MK, PK들이 교회를 세우고, 그와 함께한 중직자들과 멤버들이 결국 복을 받아요. 그러니까 역사의 맥이 뭐냐면 언약을 분명히 깨달은 한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은 세상과 모든 부분을 움직이신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28장 19절에 그래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저는 이 에벨과 그 아들 벨렉의 단어 뜻을 보면서 그 시대의 하나님의 언약과 정체성을 확인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에벨은 ‘건너오다’ 이런 뜻이고, 그 아들 벨렉의 뜻은 ‘나뉘었다’, ‘갈라졌다’ 이 말이거든요. 여기서 구별된 거룩한 백성의 삶을 분명히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이 거룩한 언약의 백성은 어떤 존재입니까? 세상에서 건너와야 합니다. 세상으로부터 나뉘어야 합니다. 그리고 세상으로부터 분명히 갈라져야 됩니다. 이것이 바로 거룩한 백성의 정체성입니다. 그때부터 성령의 세밀한 인도를 받게 되고, 새롭고 성결하신 주님을 통해서 은혜받고 새로운 영적인 지각이 열리게 되는 거예요. 그게 새로운 출발입니다. 세상은 계속해서 하나님 없는 성을 쌓으라고 우리를 유혹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세상을 건너와 하나님의 언약 속에 정착하라고 말씀하시고, 오늘 셈의 족보에 기록된 이 부분의 분명한 특징이 뭐냐 하니 한결같이 이 땅에 오실 메시아를 바라봤던 분들이지요. 그 증거가 이들은 그 현장에서 피의 제사를 드렸고 그 피의 종착역은 바로 그 주인공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아닙니까? 구약 시대에도 다 복음적인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축복 누렸습니다. 요한계시록 20장에 보니까 누구든지 이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했습니다. 누가 생명책에 기록됩니까?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참 믿음을 가진 것은 어마어마한 축복인데 우리의 희망과 소망은 바로 이것입니다. 내 이름이 하늘나라 생명책에 기록되었다는 것. 오늘 여러분들은 감사하게도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을 받은 언약의 백성입니다. 내가 서 있는 이곳에서 언약의 계보를 잇는 거룩한 사람,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는가, 혹은 나도 모르게 세상의 흐름을 따라 살아가는가? 이런 부분을 한번 확인하신다면 더 믿음의 든든한 축복을 누릴 줄 믿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주님의 은혜를 감사합니다. 오늘 저희들은 하나님의 선택받은 언약의 백성임을 믿습니다. 이 시대에 셈의 후손으로서, 언약의 백성으로서 거룩한 삶을 살아가게 하시고 우리의 삶의 발걸음을 통해서 영향을 끼치게 하옵시며 성령으로 충만케 하여 주옵소서. 그리고 우리를 향한 이 선교의 분명한 의미가 있음을 깨닫고 이 시대의 선교의 주역이 될 수 있도록 하나님 축복하옵시며, 우리 서미 선교회에 하나님의 큰 계획이 반드시 이루어지게 축복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