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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새로운 시작, 언약의 하나님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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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작, 언약의 하나님 (창9:1-7) 현대 사회는 인간의 가치를 능력과 소유나 외모로 평가하곤 합니다. 하지만 오늘 성경 본문에서 하나님은 인류의 새로운 출발점에 생명의 존엄성이라는 대원칙을 세우셨습니다. 중요한 말씀이 뭐냐 하니까 피째 먹지 말라. 하나님 말씀에 짐승을 식물로 먹을 수 있지만 절대로 피째 먹지 말라, 그리고 그 생명을 반드시 찾으리라. 이 엄중한 경고는 인간이 단순히 진화의 산물이 아니라 창조의 형상을 입은 고귀한 존재임을 선포하시는 것이고, 그리고 또 여기에 복음적인 엄청난 진리가 담겨 있습니다. 왜 하나님은 이토록 인간의 생명에 집착하실까? 그것은 바로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았기 때문이다 오늘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통해서 나 자신의 가치를 회복하고 다른 사람을 향한 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해야 될지 그런 부분에 조금 고민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1절에 보면 1절과 7절은 반복해서 나오는데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그랬습니다. 아주 중요한 말씀인데 이 말씀의 그 의미를 보면 우리 개역성경 그리고 NIV 성경에도 똑같이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그렇게 말씀하고 있는데, 현대인의 성경이나 그리고 또 우리말 두란노 성경이나 CSB 성경을 보면 'have many children and grandchildren'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게 뭐냐니까 자녀를, 후대를 많이 가져라 이렇게 번역하는 거예요. 그렇다면 이 가정의 축복을 말씀하고 있거든요. 지금 이제 노아를 통해서 인류를 새롭게 번성시켜야 되는 그런 상황에 아담에게 주신 그 말씀입니다. 그래서 인류 최초나 인류의 과정이나 결론까지 가장 하나님이 관심 갖는 그 최고의 조직은 뭐냐니까 가정이라는 조직이에요. 가정을 통해서 하나님의 모든 계획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오늘 이 본문 말씀은 가정의 축복을 주님께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가정의 축복은 인류의 축복과 연결되잖아요, 사회의 축복과 연결되잖아요. 가정이 축복을 받으면 사회가 축복을 받아요. 그런데 가정이 축복을 못 받으면 사회에 재앙이 바로 들어옵니다. 그런데 그 축복 중에 최고 축복이 뭐냐니까 생명의 축복이에요. 자녀의 축복입니다. 사람이 축복의 근원이잖아요. 그래서 결혼은 너무 중요하다는 거예요. 복음의 사람이 가정을 많이 갖느냐, 세상 사람이 가정의 축복을 많이 받느냐 여기에 따라서 판도가 바뀌어져 버려요. 그래서 이런 부분에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정말로 기도를 많이 해야 되고 이 축복을 우리가 받아야 돼요. 생육, 번성, 충만 이것은 가정의 축복과 문화적 사명입니다. 4절에서 6절에 보니까 "그러나 고기를 그 생명 되는 피째 먹지 말 것이니라." 이 말씀 속에는 하나님의 그 생명을 향한 엄청나게 중요한 말씀을 하신 거예요. 심지어 "내가 반드시 너희의 피 곧 너희의 생명의 피를 찾으리니 짐승이면 그 짐승에게서, 사람이나 사람의 형제면 그에게서 그의 생명을 찾으리라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음이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생명의 근원은 어디에 있다고요? 피에 있는 거예요. 생명의 근원은 피. 생명의 소중함을 말씀하고 있는데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잖아요. 그 생명의 대가는 반드시 찾는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서 그 속에 포함된 게 있어요. 하나님은 그러면서도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직접 개입을 하셔 가지고, 그 생명 속에 개입을 하셔 가지고 피의 값을 치르고 그 잃어버린 생명을 반드시 찾는다는 이 강력한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사람은 악해 가지고 피를 흘릴 수는 있어도 회복은 안 되거든요. 회복할 수 없어요. 그 회복을 누가 하시느냐? 하나님이 직접 하겠다는 겁니다. 이 말은 뭐냐, 메시아 되신 이 그리스도의 그 희생을 통해서 죄가 사함받는 이 속죄의 원리를 우리에게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레위기 17장 11절에 보니까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지금 피의 복음을 말씀하고 있잖아요. 인간의 역사는 피가 흘려지는 역사잖아요. 죄를 짓고 상처를 주고 피를 흘리게 하고 사람을 죽이고 참 이런 피의 역사인데, 심지어 뭐 한마디로 죄의 역사거든요. 그런데 이것을 어떻게 회복시킵니까? 인간은 회복시킬 수가 없어요. 그래서 그 모든 상처와 허물과 엄청난 재앙을 인간을 탓하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이 직접 그 몸을 드려서 자신이 죽음으로 인간의 모든 피의 값을 회복하겠다는 강력한 복음의 메시지입니다. 이 피 복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공의도 보고 하나님의 사랑을 또 확인하고, 참 이게 성경의 기록 아닙니까? 인간이 얼마나 존엄한지 그 존엄한 이유가 뭐냐니까 하나님이 이렇게 자신이 희생하시면서 잃었던 생명을 반드시 찾으시겠다는 그 이유를 보면 알아요. 그 이유가 뭐냐?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음이니라." 인간이 이렇게 존엄한 이유는 인간의 능력이나 인간 그 자체의 가치 때문이 아니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슬퍼하실 때,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실 때 그때가 언제인가 하면 이 피의 복음을 통해서 길을 완전히 열어놓았음에도 불구하고 구원받지 못하고 멸망의 길을 끝까지 갔다가 결국 지옥 가는 그 인생을 보면서 하나님은 가장 슬퍼하십니다. '이게 내 아들, 사랑하는 아들을 십자가에 희생시킴으로써 모든 피의 값을 다 회복하는 길을 열어놓았는데도 불구하고 왜 인생이 이 복음의 길을, 새롭고 산길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너무 쉬운 길 믿으면 되는데 왜 믿지 않고 강팍한 길로 끝까지 가는가' 그래 가지고 결국 하나님 원치 않는 그 지옥으로 떨어지는 거 보면서 주님은 너무너무 슬퍼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실 때 언젠가, 구원의 길을 열어놓으신 그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주님께 회개함으로 돌아옴으로 그 생명을 회복하고 구원받는 것을 보고 하나님은 너무 기뻐하십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예 8절에 보니까, 8절에 보면 또 중요한 말씀하시잖아요. 그 중요한 말씀이 뭐냐니까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있던 그의 아들들에게 말씀하시는데 하나님 언약을 세우잖아요. 그 언약이 뭐죠? 무지개 언약이잖아요.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그러면서 영원히 세우는 그 언약의 증거 무지개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무지개라는 단어, 히브리어 그 '케세트(Keshet)'라는 이 말의 의미는 활을 의미하거든요. 활. 심판의 활이 인간을 향해서 방향을 두고 쏘지 않고 그 활이 하늘을 향해서 활을 쏘는 이 무지개. 이것은 바로 하나님이 인간의 모든 죄를 가슴에 안고 심판의 화살을 자신에게 돌리시는 그 사랑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 거예요. 하나님이 심판의 화살을 자신에게 돌리시는 것. 비가 온 뒤에 구름 속에서 일어나는 그 무지개를 보면서 하나님이 스스로 그 약속을 기억하시면서 '끝없는 사랑, 계속적인 사랑을 베풀어야 되겠구나.' 끝없이 그 사랑을 베푸는 그 길이 무지개의 주인공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끝없는 사랑을 베푸시는 거예요. "누구든지 오너라 용서한다. 죄를 탓하지 않는다. 내가 너를 다 덮어 주겠다. 영원한 죄도 덮어 주겠다. 걱정하지 마라" 오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인 거죠. 구름 속에 그거를 딱 두시면서 하나님은 뿌듯해하시면서 그 약속을 끝없이 이어가시는 거예요. 무지개 언약은 멸망받아 마땅한 인류에게 구원의 방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그 십자가의 복음을 하늘에서 선포하고 있다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하늘에서 하나님 무지개를 통해서 복음을 선포하는 거예요. 이 땅이 존재하는 동안 이 십자가의 복음은요 하늘에서도 선포되고 이 십자가의 복음은 인간이 살아가는 동안에 땅에서도 이 복음이 끝없이 선포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인류가 사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참 십자가의 복음이 계속 선포되는 것은요 우리도 살지만 주위를 살리는 어떤 영적인 힘이다 이거예요. 이게 이제 우리가 감당해야 될 엄청난 사명이지요. 이런 부분에서 참 교회 성도들이 귀하고 그 말씀 증거하는 교회당이 그렇게 귀하고 교회당이 하나 세워졌다는 것은요 흑암이 무너지는 전진기지란 말이에요. 이 사명을 감당하고 있는 이게 우리의 사랑이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천명, 소명, 사명의 이 일을 감당하는 거예요. 이 영적인 사명을 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 앞에 드리는 이것이 이 세상을 살리는 길이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은혜 충분히 받으시고 이 은혜받은 마음으로 현장에 들어가면요 하나님께서 손길로 작업하시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18절 한번 보겠습니다. 방주에서 나온 노아의 아들들은 셈, 함, 야벳인데 함은 가나안의 조상이지요. 노아, 위대한 신앙의 영웅도 안락함 속에서 방심할 수 있습니다. 포도주에 막 취해버렸으니까 방심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노아가 길거리 다니면서 그런 것도 아니고 집 밖에서 그런 것도 아니고 집 마당에서 그런 것도 아니고 자기 방에서 포도주 마시고 그냥 옷을 벗고 막 참 방임된 거죠. 이럴 때에 문제가 나타나지요. 중요한 것은 뭐냐니까 이때 그 자녀들의 그 영적인 본질이 드러난다는 거예요. 이 함의 잘못이 뭐냐니까 아버지의 허물을 보고 덮어줘야 되는데 폭로를 해버린 거예요. 그 의미가 뭐냐? 그냥 철없이 폭로했다 그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이 그 중심을 보니까 그 마음속에 아버지를 존경하지 않고 그 아버지의 권위에 대한 불신을 하고 전혀 사랑이 없는 거예요. 그런데 그걸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함의 깊은 속에는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바로 이렇다는 거예요. 하나님을 향한 그 불경건이 그 아버지의 실수를 통해서 그 본질이 확 드러나는 거예요. 하나님 바로 이거를 보신 거예요.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향한 불경건, 즉 하나님을 향한 경건한 중심이 상실된 증거라고 본 거예요. 22절에 보니까 "가나안의 아버지 함이 그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그의 두 형제에게 알리매." 이것을 주님은 심각하게 본 겁니다. 그런데 반면에 셈과 야벳의 태도를 보세요. 그것을 보는 순간에 뒷걸음질을 쳐 가지고 아버지의 하체를 이렇게 덮어주고 허물을 덮어주는 그 사랑과 존중, 그 중심이 딱 나오잖아요. 이것은 바로 하나님을 향한 그 마음이 그 가정의 그 사소한 일에서 그대로 나타나고 드러나는 거예요. 23절에 보니까 "셈과 야벳이 옷을 가져다가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덮었으며 그들이 얼굴을 돌이키고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였더라." 노아가 깨면서 아마 성령으로 알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말하기를 "노아가 술이 깨어 그의 작은 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 이르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의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그런데 26절에 보면요 참 중요한 말씀이 뭐냐니까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셈의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야벳은 창대하게 되어 셈의 장막에 거한다, 확장과 번영을 약속하는데 셈의 하나님을 찬송하는 그 안에 완전 시대적인 언약이 들어있는 거예요. 셈의 그 후손의 기록이 창세기의 기록이거든요. 이 셈의 후손을 통해서 하나님의 큰 뜻을 이루는 그 줄기에 그 하나님을 지금 찬송하고 있습니다. 셈의 후손들이 누굽니까 여러분? 셈의 10대 손이 노아입니다. 노아를 통해서 지금 쭉 내려오면서 결국 아브라함이 나오고 테라가 나오고 아브라함이 나오고 이삭이고 이러면서 유다를 통해서 결국 다윗의 후손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나는데 노아가요 이렇게 참 복음적인 신앙을 갖고 있는 거죠. 노아는 하나님 앞에 제단을 드릴 때도 피 있는 제사의 의미를 아는 거예요. 셈과 야벳은 이 복음을 받은 마음이지요. 그런데 함은 바로 이 중요한 복음을 경홀히 여기고 우스운 것으로 여기다가 결국 이렇게 들통난 거예요, 본질이. 오늘도 우리가요 하나님을 섬기면서 작은 일에 내 본질이 드러날 때 빨리 눈치를 채야 돼요. '아 내 영적인 깊은 상태가 이걸로 나타나는구나.' 그게 이제 회개라는 중심이거든요. 이게 마음이 무뎌지면요 다른 사람만 잘 보는데 자신에 대해서는 전혀 못 봐요. 회개도 없고 반성도 없고 뉘우침도 없고요. 이게 이제 강팍한 거고 바로 하나님을 늘 거스르는 인생이 되는 거예요. 성령의 사람은 작은 일에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돌아봅니다. 하루를 돌아보면서 '주여 오늘도 내가 마음으로 지은 죄, 중심으로 지은 영으로 지은 죄 하나님 앞에 회개합니다, 용서해 달라고요.' 끝없는 주님은 용서하시니까요. 고백하고 인정하면 묻지도 않고 하나님은 "그래, 그래서 그 아들의 피가 있지 않나? 그 생명이 있지 않나? 믿음으로 서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이게 이제 반복이 되면서 믿음의 삶으로 딱 서게 되는 겁니다. 그때 얼마 지나면요 이제 하나님의 나라가 나한테 형성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의 일이 이제 이루어지는 거예요. 하나님이 그거를 굉장히 기뻐 받으십니다. 이 메시지를 딱 붙잡고 한 1분 동안에 제가 결론 내리기보다는 여러분이 스스로 결론 내리고 묵상 기도 한 1분 동안만 말씀을 기억하면서 묵상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