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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가장 확실한 증거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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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을 보면 가장 우리에게 다가오는 말씀이 뭐냐니까 "찬송하리로다" 그랬습니다. 찬송하리로다. 어,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랬고, 또 그의 영광을 찬송하려 하심이라. 구체적으로 어떤 영광을 찬송한다는 것입니까? 6절에 보니까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찬송은 참 이렇게 각 지역마다 그건 달라도 공통적인 것이 뭐냐니까 하나님이잖아요. 하나님을 찬양하는 거잖아요. 예. 그래서 어 찬송을 한다는 게 참 우리가 살아 있다는 증거인데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려 하심이라. 그런데 바울이 지금 감옥에 갇혀 있는 상태에서 어떻게 이런 말을 합니까? 우리는 편안한 가운데서도 찬송하기가 쉽지가 않은데 바울은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여기 터져 나오는 기쁨을 주체하지 못해서 외치는 말이 뭐냐니까 "찬송하리로다." 이 빌립보는 옥중서신이거든요. 바울이 감옥에 갇혀 있는데 쇠사슬에 매여 있는데 찬송하리로다. 참 이해가 됩니까? 어떤 성경학자는 말하기를 헬라어 원문으로는 3절부터 14절까지 마침표 하나 없는 단 한 문장으로 이어져 가고 있다 그럽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커서 숨을 숨가쁘게 하면서 찬송하리로다, 찬양을 그냥 막 쏟아내는 겁니다. 그러니까 어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 갇혔을 때에 옥문이 막 열리는 것도 바로 그냥 열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이는 그 마음이 있거든요. 믿음. 예.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이는 그 마음이 찬송하리로다, 그렇게 표현하는 겁니다. 참 이거 인간의 힘으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지요. 오늘 우리 교회에 이런 찬송의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요 세 가지로 찬송합니다. 그 세 가지가 뭐냐면 성부 하나님께 찬송하고, 두 번째가 성자 예수님께 찬양하고, 세 번째가 성령 하나님께 찬송합니다. 그 찬송의 제목이 뭐가, 그 찬송의 제목이 바로 우리의 찬송의 제목이 되기를 바랍니다. 첫째로 3절에서 6절에 보니까 성부 하나님을 찬송했는데 그 찬송의 제목이 우리를 선택하신 복을 주셨다. 우리를 선택했다는 거예요. 영세 전에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일찍이 이렇게 우리가 선택함을 받았다 이 말이에요. 선택받은 증거, 여기 지금 말씀드리고 있잖아요, 여러분들. 예배드리고 있잖아요. 여러분들이 뭐 하나님께 예배드리지 다른 데서 하는 거 아니잖아요. 그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여러분들이 알고 보니까 성경은 말씀하기를 선택해 주셨다는 거예요. 우리의 구원이 우연이나 우리의 뭐 공로나 노력이 아니고 영원 전부터 구원받기로 계획되었고 여러분들 여기 와 있는 거예요. 이게 감사의 제목입니다. 여러분들이 구원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것은 내가 볼 때에 저 사람은 구원받았다 못 받았다 그거 다 틀린 거예요. 그거는 우리의 소견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무조건 선택해서 불러 주셨다는 거죠. 이건 하나님의 소원이었기 때문에 이런 부분에 우리가 우리 시야로 '아, 구원받았다 못 받았다' 뭐 이런 이야기 한다는 것은 성령을 거스르는 겁니다. 하나님을 믿는 게 아니에요. 요한복음 15장 16절에 보니까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예수님이 말씀하셨어요.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고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다. 디모데후서 1장 9절에 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셨다.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셨다." 영원 전부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셨다. 참 하나님의 손길이 얼마나 큰지 우리 어떤 조건이 하나도 없어요. 예. 우리의 조건은 하나도 없고 그냥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불러 주신 거예요. 우리 대한민국이 복음 받은 것은 우리 대한민국의 어떤 공로가 아니고 하나님이 어떤 세계를 구원하시는 이 흐름 속에 대한민국을 하나님이 세워 주셔 가지고 이렇게 복을 주신 겁니다. 여기에 우리가 더불어 복을 받는 거 아닙니까? 복 받은 겁니다. 여러분들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주신 하나님. 하나님은 우리에게 세상의 썩어질 그런 복이 아니고 영원한 하늘의 복을 주셨다. 이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다른 방법이 없어요. 믿는 거는 믿는 거예요. 베드로전서 1장 3절에 보니까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이게 확실하기 때문에 위로부터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는요 위의 것을 찾습니다. 위의 것을, 우리 수준은 그런 의미예요. 우리의 수준은 땅의 것으로 사는 그런 존재가 아니고 위의 것을 찾으라, 위의 것을 생각하라,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땅의 것이 필요하지만 그것은 우리의 본능으로 살아가면서 얼마든지 이렇게 할 수 있는 거잖아요. 그러나 위로부터 주시는 이 모든 축복은 이거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데 딱 죽고 나야 알거든요, 이거는. 그건 모르잖아요. 죽고 나면 아는 어마어마한 영생에 관계된 축복이라서 이거는 믿음으로만 깨달아야지 내 이성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게 맞아요. 이성으로는 보통 이해가 안 되지만 믿음의 눈으로 '야, 내가 구원받은, 위로부터 하나님으로부터 선택함을 받고 내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구나.'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인 증거 중에 증거가 뭐냐면 하나님을 향하여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 있어요.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향하여 "아빠 아버지"라고 고백이 나오면 하나님의 자녀 맞아요.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고 아빠로 부르니까 너무 편하고 좋다, 그런 사람은요 성령이 함께하는 하나님 자녀입니다. 우리 모든 서밋 성도님들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로 부르시기 바랍니다. 주기도문에서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저는 기도할 때에 영접 기도를 주로 하지만 영접 기도도 안 될 때가 있어요. 영접 기도도 안 될 때가 있거든요. 그때는 저는 주기도문을 하는데 주기도문 다 하지 않고 늘 이 첫 부분을, 참 중요한 거예요.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하나님 아버지, 아빠라고 부르면서 "아버지" 이렇게 부르면요, 계속 아버지를 부르면 뭔가 이렇게 위로가 되고 뭔가 이렇게 평안이 오고 은혜가 있어요. 여러분 안 그렇습니까? 기도 많이 할 거 있습니까? 기도 많이 할 이유가 있는 사람은 있지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상태잖아요, 상태. 하나님 이름을 계속 불러요.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 아버지." 그래서 막 계속 때로는 눈물도 납니다. 하나님 아버지라는 그 호칭이요, 나한테는 얼마나 중요한지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 아버지." 성경에 보니까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 그랬거든요. 하나님은 우리를 단순히 구원하신 것을 넘어 가지고 당신의 가족으로 삼아 주셨습니다. 이 양자라 그러잖아요, 양자. 예수님이 하나님 아들이잖아요. 그런데 예수 믿는 우리도 양자로 예수님처럼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그런 신분을 만들어 주셨다는 거죠. 이 가족이라는 그 친밀한 관계를 말씀하고 있는데 로마서 8장 15절에 보니까 양자의 영을 받았다. "다시는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갈라디아서 4장 6절에 보니까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아버지를,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를 수 있는 이유가 뭐냐? 양자의 영을 주신 거예요. 이게 성령이거든요. 양자의 영을 주시니까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신 이유가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거룩함입니다. 하나님을 부르면 누구를 닮아갈까요? 예. 하나님을 닮아가겠지요. 계속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그 하나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으로 서면 자꾸 바뀌어져요. 어떻게? 하나님처럼 거룩한 사람이 됩니다. 바뀌어요. 거룩함은 내가 지킴으로 거룩함이 되는 것이 아니고 신분으로 우리의 영을 주시기 때문에 거룩한 사람이 되는 거예요. 될 수밖에 없어요. 두 번째가 뭐냐면 성자 예수님을 찬송했습니다. 성자 예수님이 우리를 구속하신 복을 주셨다. 성자 예수님이 우리를 구속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하셨다. 속량.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이 속량이라는 것은 몸값을 지불하고 노예를 해방시킨다는 시장 용어입니다. 우리의 자유가 그리스도의 생명값으로 얻어진 것임을 강조하고 있지요. 베드로전서 1장 18절에 보니까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왜 우리를 피로 사셨는가? 왜 교회를 주셨는가? 왜 우리를 구원하셨는가? "그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오늘 본문에 영광의 찬송. 그러니까 찬송의 제목들이요 다 보면 복음 보면 예수님의 피를 찬송하기 때문에 이 찬송의 제목입니다. 우리가 천국 가서도 역시 어린 양의 그 은혜를 찬송하거든요. 이사야 43장 21절에 보니까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누가 뭐래도요 찬송하는 거 보면요 영적 상태가 드러납니다. 찬송에서 모든 게 다 드러나요. 찬송이 안 나온다, 문제가 있는 겁니다. 그게 하나님의 은혜가 이렇게 중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성령 하나님이 우리를 인치시고 보증하신 복을 말씀했습니다. 성령 하나님이 어떻게 했다고요? 우리를 인치심으로. 하나님의 그 예정, 예수 그리스도의 그 구속, 이것을 성령으로 탁 도장을 찍어 버리는 거죠. "너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다." 성령님의 인치심, 이게 굉장히 중요하고 계시록에 이 의미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인치심, 도장은요 확정과 보호를 의미하잖아요. 구원의 확정과 보호.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이 구원을 끝까지 주님이 책임지신다는 증거로 도장을 꽉 찍어 버려. 이게 얼마나 기적이고 얼마나 축복인지 모릅니다. 에베소서 4장 30절에 보니까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한다는 여기 의미는 뭐냐니까 분명히 구원받았는데, 구원받도록 인도하셨는데 마치 구원받지 않은 것처럼, 불신자처럼 그렇게 허망하게 사는 것을 성령을 근심시키는 거예요. 그래서 구원의 확신이 필요합니다. 틈틈이 거울 앞에 서서 "너는 구원받았어. 너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야." 이렇게 할 때 그게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마지막으로 요한복음 10장 28절에 보니까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예수님의 말씀이잖아요. 주님이 구원하신 것,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예정하셨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우리를 위해 죽어 주셨고 그리고 성령님이 탁 도장을 딱 찍어서 "너는 구원받았다." 평생 살아가면서 한 번이라도 내가 구원받았다고 확신이 되면 그 사람은 구원받은 사람이에요. 한 번이라도 주 예수님이 날 위해 죽어 주셨고 나는 예수 믿는다 요렇게 생각이 들었다, 그거는 구원받은 사람이에요. 흔들릴 필요 없습니다. 승리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우리가 복을 받은 이 최종 목적은 우리 자신이 잘되는 데 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노래하는 데 있음을 믿습니다. 고난 중에도 기쁠 때에도 우리 입술에서 찬송이 떠나지 않는 우리의 마음과 입술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