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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하나님과 동행하는 법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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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께 나아갈 때 어디를 가고 기도할 때에 기도가 달라요. 집중해서 기도합니다. 우리 사람은 집중하지 않으면요 결국 분열되고 집착과 중독에 빠져버려요. 그건 타락이거든요. 인간 실패입니다. 그런데 집중해서 기도하면요 영적인 생명선이 회복되고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열리게 됩니다. 그래서 몸의 그 생명선 이게 회복이 되는데 집중해서 하나님께 드리는 그 사람은 또 하나 더 포함되면 뭐냐, 이 깊은 호흡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 기도할 때요 가슴 호흡으로 하면 몸이 상해요. 그런데 심호흡하면서 깊은 호흡을 하면서 하나님께 집중하면요 이게 정말 집중의 힘이 강합니다. 그리고 이 어 우리 심호흡은 굉장히 중요한 게 기도할 때뿐만 아니라 모든 삶에 있어서 이 생명선이기 때문에 호흡을 깊게 하면 건강도 회복되고 그리고 일을 하루 끈기 있게 끝까지 잘할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본론을 시작하면 다 중요할 때는요 심호흡을 하게 돼 있어요. 중요한 일을 가슴 호흡을 하다가는요 일하다가 망해 버려요. 일하다가 쓰러져 버려요. 여러분들 일하다가 오래 못 가고 중도 포기하고 쓰러지는 특징이 뭐냐 하면 이게 가슴 호흡을 해요. 중요한 일을 할 때에는 항상 심호흡을 해야 돼요, 기도할 때. 여러분 기도할 때 심호흡하거든요. 여러분들 심호흡으로 다 기도하고 그리고 또 깊은 호흡을 하면서 틈틈이 다 집중하고 일을 하면요 일의 능률도 오르고 효과도 훨씬 좋습니다. 만약에 가슴 호흡으로 일을 시작하고 계속 지속하면요 큰일 할수록 몸이 상해 버리잖아요. 일하다가 쓰러지는 사람 많거든요. 중도 포기하는 사람 많고 굉장히 건강에 위험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집중 기도하는 게 정말 중요하고 집중 기도할 때는 필수적으로 이렇게 어깨를 펴고 심호흡을 다 하면서 기도하고 이런 자세로 어떤 일을 하든지 어려움이 올 때에도 기도하는 마음으로 심호흡을 다 하고 일을 감당하면 하나님이 지혜를 주세요. 기도하는 자에게 은혜 주시고 지혜를 주시고 축복하십니다. 자, 마지막으로 성경에 나오는 모든 선진들은 다 이러한 믿음을 갖고 믿음의 삶을 살아남으로 승리했는데 뭐라고 말씀하냐니까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 그랬거든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 이렇게 하면 우리가 어떻게 느껴집니까?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 이렇게 하면 좀 애매합니다. 그렇죠? 그런데 영어 성경을 보니까 실상을 'sure'라는 단어를 썼고 증거라는 것도 'certain' 이렇게 썼단 말이에요. 여러분 아시다시피 'sure'라는 단어와 'certain'의 공통점은 확신이거든요. 확신의 단어에서는 확신이에요. 그러면 좀 더 우리에게 와닿게 해석한다면 "이제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을 확신하여 믿고 보지 못하는 것을 확신하여 믿는 것이다" 이렇게 돼요. 좀 이해가 되죠. 그러니까 이제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을 확신하여 믿고 보지 못하는 것을 확신하여 믿는 것이다. 바라는 것을, 무엇을 바란다는 거예요? 하나님 바라는 거 아니에요. 무엇을 본다는 거예요? 분명히 믿음의 사람들은 확신하고 뭔가 보았고 잡았어요. 거기에 대한 확신을 갖는 거예요, 확신. 선진들은 이로써 증거를 얻었다 그랬습니다.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어, 증거라 그러면 그냥 우리가 어 성경에 보니까 증거란 단어가 많이 나오는데 그 증거란 단어에도 어 다른 단어를 썼더라고요. 그게 뭐냐니까 'commended for'라는 단어를 썼는데 이게 사실은 칭찬받았다는 이야기예요. 우리 언급할 때 'commend'라 그러잖아요. 예. 칭찬할 때 마찬가지로 선진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증거를 얻었다는 것은 뭐냐 하면 하나님의 칭찬을 받은 확실한 증거가 있는 거예요. 하나님이 바로 칭찬하셔요. 그 칭찬을 받으면서 일을 했다는 거예요. 힘든데 하나님은 증거를 주셔요. 칭찬하고 격려하면서 잘했다, 힘내라, 내가 너와 함께한다, 염려하지 마라, 내가 너를 돕는다, 낙심하지 마라, 너의 하는 일이 하나님의 기쁨이야, 힘내. 그러면 성령으로 우리에게 뭔가 증거를 주시는데 그게 보니까 칭찬으로 역사하는 거예요. 이런 증거를 가지고 지속하는 거죠. 맹목적으로 하는 거 아니지요. 그런데 그 예로 아벨의 믿음과 에녹의 믿음을 지금 말씀하고 싶은데, 아벨의 믿음은 뭐냐? 그 아벨의 믿음은 언약의 예배입니다. 그 언약의 예배가, 아벨은 가인보다 믿음으로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므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의로운 자라는 증거를 얻었다. 언약은 그 증거가 뭐냐니까 피 있는 제사거든요. 의로운 자라는 증거를 얻은 게 피 있는 제사, 예배 성공이잖아요. 언약의 성공이지요. 증거는 얻었다, 여기에도 'commend'라는 단어를 썼는데 이게 이제 증거지만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은 거지요. 의인으로 인정받은 거예요, 칭찬받은 거예요. 우리는 이 예배를 언약적으로 성공해야 되는데 사도행전 5장 42절에 초대교회 성도들은요,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거치지 아니하니라. 이게 바로 아벨의 믿음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갈 때는 언약이 분명했어요. 그러면 아벨이 가진 믿음이 뭐냐? 메시아가 모든 문제 해결이다, 메시아가 피를 쏟으며 희생하시는 분이 오신다, 이것을 믿으면서 양의 희생을 통해 예배드린 거예요. 그게 가인과 다른 거거든요. 언약이 분명한 예배, 이것을 하나님은 기뻐 받으십니다. 그래서 모일 때마다 예배 때 가장 중요한 주인공이 뭐냐니까 십자가의 믿음과 부활의 믿음을 가져야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혔잖아요, 그렇죠?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했는데 그와 나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 이거죠. 바울 사도는 응답했고 예수님도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으면 나와 관계없다" 그랬거든요. 그 말은 자기 십자가는 뭐죠? 예수님의 그 십자가 못 박힌 것은 바로 내가 당해야 될 그 십자가, 내가 못 박혀야 될 것인데 주님이 못 박히셨단 말이에요. 그러면 내 문제, 십자가에서 내 과거 모든 문제, 죄, 저주 끝난 건 분명한 거거든요. 그러면 끝났으면 끝났다는 믿음 하에서 우리가 살아야 되고 믿음으로 해야 되고, 그러면 어디로 출발합니까? 십자가로 출발해 가지고 부활로 가는 거죠.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나와 함께하십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나와 함께하신다는 그 믿음으로, 그게 이제 언약의 예배입니다. 아벨이 바로 그런 언약 믿음으로 성공했고. 두 번째 에녹의 믿음인데, 에녹의 믿음은 무슨 믿음일까요? 에녹의 믿음은 성경은 말씀하기를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여기도 똑같이 'He was commended as one who pleased God',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고 하는 그런 어 증거를 얻었다, 하나님 칭찬을 받은 거죠. 그러면 에녹의 믿음은 어떤 믿음일까? 창세기 5장 24절에 보니까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심으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것은 원어로 보니까 에녹이 하나님과 함께 걸어갔다는 거죠. 그렇다는 거예요. 그 인생을 그렇게 살았다는 거거든요. 에녹은 그 삶이 하나님의 기쁨이었어요. 그 삶을 놓고 하나님과 함께 걸어갔어요. 하나님과 어떻게 걸어갔을까요? 하나님과 대화하며 기도했다는 의미거든요. 여러분도 그게 될 수 있어요. 그냥 의미 없이 내 생각대로 막 일을 할 수 있지만, 내 신분 하나님의 자녀라는 확신이 있으면 하나님 나와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하나하나 대화하면서 하는 거죠. 하나님과 대화하면서 물어보고 대화하고 이렇게 해보세요. 그러면요 굉장히 다를 거예요. 에녹이 바로 그거예요. 하나하나 물어보면서 "주님 이러면 어떻습니까? 이게 왜 그렇습니까? 나는 왜 이래 마음이 이럴까요?" 다 대화하면서 움직이다 보면 그 대화 속에서 하나하나 응답이 와요. 이게 오늘날 필요한 거 아닙니까? 요즘 세상에요 너무 볼 게 많고 들을 게 많고 혼란스러운 게 많거든요. 그냥 따라가는 거야. 그렇게 살면 결국 좀 있으면 이 영혼이 피폐해져 가지고요 기도하려 그러면 기도가 안 돼, 마음이 허해 가지고. 가장 정상적인 하나님의 자녀는 기도할 때 마음이 편하고 기도가 집중이 되고 기도하는 시간이 어느 정도 가는지 모를 정도로, 적어도 한 10분 정도는 그냥 싹 집중할 수 있는 정도 돼야 되지 않겠습니까? 예를 들면 10분이라 그러는데 더 이상도 가능하고. 그런데 저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는 증거를 받은 자가 에녹인데, 무엇을 했길래 하나님의 기쁨이 됐을까? 이렇게 하나님과 걸어가면 그냥 입 다물고 걸어갑니까? 그 속에 어떤 행동이 있거든요, 결과물이 있는데 그것을 보니까 사도 바울이 언급을 했더라고요.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전서 4장 1절에 보니까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끝으로 주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구하고 권면하노니 너희가 마땅히 어떻게 행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지를 우리에게 배웠으니 곧 너희가 행하는 바라 더욱 많이 힘쓰라."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것이 뭔지를 이야기한 거예요. "너희가 주 예수로 말미암아 무슨 명령으로 준 것을 아느니라. 그것이 뭐냐니까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하나님의 뜻,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게 거룩함인데 그 거룩함이 뭐냐 하니까 음란을 버리고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 대할 줄을 알고, 가정의 소중함.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 같이 색욕을 따르지 말고 이 일에 분수를 넘어서 형제를 해하지 말라. 요 말씀에 보면 뭐가 들어가 있습니까? 우리의 삶이, 우리의 경건이 이웃에게 전달되기를 원하는 거예요. 그 경건과 하나님과 함께 가는 그것이 영향력이 이웃에게,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분수를 넘어서, 분수가 뭐죠? 자기의 감당하지 못하는 너무 다른 생각 때문에 분수를 넘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런데 자기가 감당하지 못하는 것을 막 보여주기식으로 하는 그거는 하나님 원치 않아요. 하나님 주시는 그 은혜와 축복이 있는데 그 축복의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걸 하라는 거죠. 그래서 일의 분수를 넘어 형제를 해하지 말라. 그리고 또 계속 보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하게 하심이 아니요 거룩하게 하심이니 계속 거룩을 말씀하죠. 그리고 또 한 가지 또 강조하는 게 뭐냐니까 이 교훈을, 이 명령을 버리는 자는 사람을 버림이 아니요 너희에게 그의 성령을 주신 하나님을 버림이니라. 이 교훈을 이렇게 버리는 사람은 사람의 명령을 어기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주신 하나님을 버림입니다. 마지막에 보면 "조용히 자기 일을 하고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 이는 외인에 대하여 단정히 행하고 또한 아무 궁핍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계속 나옵니다만 강조하는 게 딱 중요한 게 뭐냐니까 형제에 대해서, 그리고 또 사람에 대한 것, 그리고 자기 일을 제대로 하고 너희 손으로 일하고 힘쓰는 거 있잖아요. 내가 수고한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일하는 그것을 기뻐하셔요. 뭔가 큰 축복을 받아서 일하는 그거는 누구나 할 수 있는데 하나님은 그것을 원하지 않아요. 하나님은 다 갖춘 분이기 때문에 요구하는 게 없어요. 그러나 우리의 믿음을 요구하시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 있잖아요.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 거기에 최선을 다했는데 거기에서 떼어 하나님께 드리는 거야. 거기에서 하나님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그거를 하나님은 받으신다 이거죠. 그게 하나님의 기쁨입니다. 에녹이 그렇게 살아왔다는 거예요. 에녹이 결혼했잖아요, 자녀 낳았잖아요, 가정을 이루었잖아요. 그런데 에녹은 그 어떤 것도 부정하고 버린 적이 없어요. 결혼했으면 아내가 있잖아요. 아내를 업신여기는 게 아니고 아내가 있고 자녀가 있는 모든 생활, 그런 거 하나도 거스르거나 외면하지 않고 다 하는 가운데 하나님과 동행하는 거예요. 다 하는 가운데 자연스러운 거죠, 특별한 것이 아니라. 근데 그 맥을 보면 누구에게든지 하나님을 대하듯이 이렇게 한 거예요. 함부로 말을 해서 사람을 거스르고 일방적으로 나가고 그리하지 않고 물의 흐름처럼 자연스러운 가운데 평화스러운 가운데서 하나님의 성령을 받은 사람은 누구든지 하나님의 사람으로 다 대하는 거, 그게 하나님 기뻐하시는 거죠. 그러니까 참 지금은 가식 덩어리 아닙니까? 시대가 어떤 목적 때문에 내면의 중심은 다 뒤틀렸는데도 그 목적을 위해서 막 웃고 그렇게 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걸 싫어해요. 내 깊은 속 내면의 세계가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게 중요한 거죠. 하나님을 진정 사랑하면요 사랑하는 그것이 이웃에게도 사랑으로 나와요. 정말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딱 서 있으면요 그 중심이 있는 대로 내가 하는 그 모든 일에 있어서도 그 믿음의 중심이 나오는 거예요. 사람이 안 알아준다고 해서 실망할 거 없습니다. 하나님이 아시거든요. 그러면 하나님이 그것을 때가 되면 어떤 사건을 뒤집어 버려요. 누구에게? 결국 기도하는 사람에게 모든 이득이 가도록 싹 바꿔 버립니다. 하나님이 사건을 바꿔 버려요. 하나님 살아계셔서 상을 주시는 거예요, 상. 그래서 "선한 일을 하다가 결코 낙심하지 말라" 그렇게 예수님 말씀했습니다. 자, 마지막으로 그러다 보니까 그리스도의 재림과 성도의 부활을 말씀하시는데 이게 우리의 희망이고 소망이잖아요. 하나님은 모든 걸 보시기 때문에 모든 것을 우리에게 유익하게 하시므로 감사하면서 하나님의 위로와 축복을 누리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주님의 은혜를 감사합니다. 믿음으로 주님을 온전히 바라고 기도로 집중의 시간을 가짐으로 내 영을 살리고 나의 몸을 살리는 축복의 비밀을 누리게 하옵소서. 나의 거룩한 삶으로 주님을 기쁘시게 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섬기는 삶으로 주의 영광을 나타내는 우리 성도, 우리 멤버들이 되게 주여 축복하여 주옵소서.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