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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세상에서 가장 가치있는 길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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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의 말씀으로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길 그런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세상은 늘 높은 자리 또 편안함 이익을 추구하지만 오늘 예수님은 전혀 다른 길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걸어가신 길은 넓은 길이 아니고 좁은 길입니다. 겸손의 길이고 희생의 길이며 헌신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인간의 얕은 수준으로는 절대로 걸어갈 수 없는 길입니다. 그러나 이 길은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길이고 축복의 길입니다. 그러면 이 하나님의 축복의 길, 가장 가치 있는 길을 가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이 길은 사실은 제자들이 걸어가는 길입니다. 이 제자들이 걸어가는 발걸음은 사실은 이거는 참 인간으로 상상할 수 없는 축복입니다. 아무나 갈 수 없는 길이죠. 이 제자만이 갈 수 있는 이 하나님의 축복의 길, 가장 가치 있는 길을 가려면 오늘 성경 말씀에 보니까 바른 중심을 가져야 돼요. 첫째가 바른 중심. 그것은 뭐냐니까 사랑과 긍휼의 마음입니다. 사랑과 긍휼의 마음이 가장 바른 중심이죠. 오늘 1절 이하에 보면 그런 말씀이 있습니다. 사랑과 긍휼의 마음은 구원받은 자의 아주 기본 근본 마음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안식일에 예수께서 한 바리새인 지도자의 집에 떡 잡수시러 들어가셨습니다. 그런데 앉아 계신 주님 앞에 수종병이라는 희귀한 병이 든 환자 한 사람이 앉아 있었습니다. 이 수종병이라는 것은 현대 의학으로는 부종 있죠, 부종. 붓는 거. 그 원인은 심장이나 신장이나 간 기능 이상 때문에 온몸이 부어오르는 아주 불치병입니다. 그런데 이때 예수님께서 항상 예수님을 엿보고 비판하는 그 율법사들과 바리새인들에게 말씀을 하십니다. 안식일에 병 고쳐 주는 것이 합당하냐 아니하냐 그렇게 물었더니 늘 시비 걸려고 따라다니는 그들이 아무 말도 못 하고 그냥 잠잠했습니다. 그들은 좀 지식이 좀 있고 백성으로부터 인정을 받아서 사는 것은 좀 살지 몰라도 그 중심들이 다 틀려 버린 거예요. 다 외식으로 이렇게 백성들을 눈가림하는 그런 사람들입니다. 그 사람들은요 늘 비판하고요, 늘 판단하고 엿보고 눈을 똑바로 못 쳐다보고 옆으로 눈을 슬쩍 돌리고 막 이렇게 살아가는 거. 인생을 그 중심이 삐딱해서. 중심이 바른 사람은요 일단 늘 바로 쳐다보잖아요. 삐딱하게 안 쳐다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 사람을 데려다가 그 환자를 고쳐 보냈습니다. 그러면서 하신 말씀이 너희 중에 누가 그 아들이나 소가 우물에 빠졌으면 안식일에라도 곧 끌어내지 않겠느냐? 그러니까 또 유대 지도자들은 말을 못 해요. 이 환자가 갈급한 마음으로 예수님 앞에 은혜받으러 앉아 있는데 '아, 참 아프겠다. 힘들겠다.' 그런 마음이라도 가져야 되는데 그런 마음은 전혀 없어요. 예수님이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가 안 고치는가 다 쳐다보는 마음. 그것 나름대로 기준이거든요. 그 기준으로 판단하는 그 마음 깊은 곳에 그 중심이 틀린 거지. 그게 삐딱한 거예요. 어 우리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맞다면 이런 마음이 기본 아니겠습니까? 아니 부모가, 위험에 처한 부모라면 자녀가 위험에 처했으면 온몸으로 온몸으로 건져내잖아요. 내가 기르던 소가 우물에 빠졌을 때 즉시 건지지 않습니까? 이와 같이 다른 이웃에게도 그렇게 되라는 의미거든요. 우리는 다르잖아요. 시대에 하도 살다 보니까 뭔가 막 내 것 네 것 확실합니다. 그리고 너무 조심하다 보니까 이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근본 삶도 무너져 버리고 세속화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제자는 그래서 안 되지요. 바른 정신을 가져야 하나님으로부터 참된 위로와 참된 축복과 그리고 응답을 받는 것입니다. 제도에 묶여 가지고 해야 할 일이 많고 안 해야 할 일도 많고 이렇게 율법에 매여 있다 보니까 지금 선을 행해야 하는 그 자리에서도 행하지 않아야 한다는 그 율법주의적 태도를 예수님은 경고하신 것입니다. 성경 말씀대로 산다고 하면서도 사랑이라는 그 율법의 정신을 잃어버린다면 다 헛된 거죠. 복음을 전한다고 하면서 복음의 정신을 잃어버리면 그 생명을 이미 잃어버린 것입니다. 복음의 흐름 속에서 그 복음의 열정과 정신을 잃어버리면 사실 다 놓친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의 참된 정신이 뭐냐? 그것은 사랑과 긍휼을 베푸는 것이다. 사랑과 긍휼은 있겠지요. 실천이 없어요. 그래서 사랑과 긍휼을 베푸는 거다.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안식일에 그 수종병으로 고생하는 사람을 고쳐 주시고 그 병에서 완전히 해방시켜 주신 것입니다. 어 이렇게 축복을 받는 사람들은 이 바른 중심이 있고 하나님이 성령으로 역사합니다. 두 번째가 뭐냐니까 이 기본 자세를 가져야 돼요. 우리 복음 단체에서 이런 말씀 많이 듣잖아요. 여러 말씀 듣는데 그 종합해 보면요 기본을 가지라는 거거든요. 하나님의 자녀로서 복음 받은 사람으로 기본을 회복해라. 그것이 예수님께서는 구체적으로 말씀하고 있는데 가장 낮은 자리에서 출발하고 온전히 섬기는 거 이게 이제 어 기본 자세입니다. 예수님은 청함을 받은 사람들이 높은 자리 택함을 보시고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그 하나가 뭐냐니까 누구에게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았을 때에 높은 자리에 앉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보다 더 높은 사람이 청함을 받은 경우에 너와 그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이 사람에게 자리를 내주라 할 때에 그때에 네가 부끄러워 끝자리로 가게 될 것이다. 이 상석의 문제잖아요. 아주 기본이거든요. 이 생각이 없으면 아무데나 앉는 거예요. 그리고 좀 더 좋은 자리, 앞자리. 어, 그리고 청함을 받았을 때에 차라리 가서 끝자리에 앉아라. 예수님 말씀이에요. 그러면 너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벗이여 올라앉으라' 하리니 그때에야 함께 앉은 모든 사람이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 그런 의미거든요.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이게 사실은 쉬운 게 아닙니다. 높임을 받으면 좋아하잖아요. 그런데 자기를 다른 사람, 내가 낮추는 것은 할 수 있는데 다른 사람이 낮게 판단해 버리면 그게 참 감당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것은 누구든지 마찬가지기 때문에 아예 처음부터 낮은 자리로 가라,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죠. 참 예수님이 얼마나 지혜롭게 우리에게 말씀을 주시는지 모릅니다. 또 예수님은 자기를 청한 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점심이나 저녁이나 베풀거든 벗이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한 이웃을 청하지 말라. 왜냐하면 사람들이 너를 도로 청하여 네게 갚음이 될까 하노라, 그렇게 말씀하신 거죠. 잔치를 베풀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저는 자들과 맹인들을 청하라. 그리하면 그들이 갚을 것이 없으므로 네게 복이 되리니. 그런데 이것이 의인의 부활과 직결된다 그랬습니다. 하늘나라의 상급과 직결되는 거예요. 우리의 모든 작은 삶이지만 그 작은 삶도 천국과 직결된다는 말씀이거든요. 만약에 예수님이 여기 오셔 가지고 같이 만나서 연합회 모임을 갖고 같이 움직인다면 예수님도 틀림없이 무시당했을 거예요. 예수님을 알아볼 사람은 거의 없을 겁니다. 눈이 그렇습니다. 왜냐? 예수님은 한 소자로 오실 거거든요. 부자로 오시는 것이 아니라 지위가 있는 분으로 오시는 것이 아니라 한 소자로 오시거든요. 그런데 한 소자를 제대로 대하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그게 이 시대에 살아가는 성도들의 본질입니다. 다 자기 위주로 하고요, 자기한테 손해되면 아 이게 또 본성이 나오고 육적이거든요. 그때나 지금이나 예수님은 똑같이 말씀하시는 거예요. 높은 자리를 택하지 않고 낮은 자리에서 겸손할 것을 권면하시는 겁니다. 진정한 축복의 사람들은요 이 겸손의 마음을 가지고 남을 섬기는 자리에 먼저 나가라는 거예요. 그리고 이렇게 이것은 뭐 특별한 건 아니잖아요. 조금만 상식 있으면 기본 있으면 할 수 있는 거예요. 뭔가 거품이 가득 차 버리니까 이런 기본이 안 되는 거죠. 오늘 우리 서밋선교회 성도님들은 이런 기본이 탄탄해야 됩니다. 가장 낮은 자리에서 작은 것으로부터 그리고 내가 있는 그 자리에서 내가 만나는 그 사람으로부터 내가 일하는 그 자리에서 내가 갖고 있는 그 상황에서부터 시작해라. 이것이 근본이요 기본의 마음입니다. 그러면 거품이 그냥 빠져 버리죠. 그런데 사람들은요 이런 사람을 유심히 보고 존경합니다. 저런 사람을 좋아해요, 알아봐요. 또 앞에 막 들쑥날쑥하는 사람은요 요즘은 사람들이 빨라 가지고 처음부터 안 좋아합니다. '아이고 저거 지 완전히' 말은 못 하지. '아유 저 아유' 그렇게 한 번이라도 그런 인식이 되면 그게 한 번이 아니거든요. 딱 인식이 돼 버리면 어 여러 가지로 참 불편합니다. 그리고 세 번째가요 온전히 순종하라. 순종은 순종인데 온전히 순종하라. 그런데 무엇을 순종해야 하는가? 우리 순종할 것 많잖아요. 근데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은 이겁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하나님 나라에 초대하는 것, 이것 순종을 말씀합니다. 잔치가 벌어졌는데 그러면 주인이 볼 때 종들이 그러면 초대를 해야지 다른 거 하면 안 되잖아요. 지금 잔치가 벌어졌어요. 그러면 할 일은 하나밖에 없어요. 잔치에 손님들을 불러와야 되거든요. 이게 이제 제자들이 할 일입니다.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베풀고 많은 사람을 청하였더니 잔치할 시각에 그 청하였던 자들에게 종을 보내 가지고 청합니다. '오소서 모든 것이 준비되었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 일치하게 사양을 해요. 초대에 갈 수 없는 핑계거리가 다 있었습니다. 그런데 세 가지로 구분해서 말씀하는데 첫째가 뭐냐니까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밭을 샀으매 나가 보아야 하겠으니 청컨대 나를 양해하도록 하라' 합니다. 여러분 밭을 샀다면 부동산을 샀다는 거잖아요. 인생에 얼마나 중요합니까? 사람들이요 땅에 관심이 많아요. 그러나 당연한 핑계거리가 있는 거예요. 그 사람들은 요즘 시대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핑계 많습니다. 그리고 또 어 한 사람은 '나는 소 다섯 결이를 샀으매 시험하러 가니 청컨대 나를 양해하도록 하라.' 여러분 소 다섯 결이는요 열 마리거든요. 소 열 마리. 그러면 엄청 놀라운 농장 주인이잖아요. 그 농장 주인이면 재산이 참 많습니다. 그러니까 마음이 그쪽으로 쏠릴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래 육신의 것에 쏠려 가지고 중요한 하늘나라 잔치에는 관심이 없는 겁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나는 장가들었으니 그러므로 가서 못 하겠노라.' 장가들었다, 평생 한 번 하는 결혼이니까 얼마나 핑계가 분명합니까? 그러나 놓친 것이 뭐냐니까 그 중요한 하늘나라 초청에 응하지 않았다는 것, 이것이 인생의 최고의 실수입니다. 종이 돌아와 주인에게 말합니다. 집주인이 노하여 그 종에게 이르되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맹인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 종이 다 시킨 대로 했어요. 그런데 종이 하는 이야기가 '주인님 아직까지 자리가 비었습니다.' 그러니까 '길과 산울타리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내 집을 채우라.'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이게 이제 제자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이거 우리 서밋선교회가 천국 잔치가 매주일 계속 모이고 있잖아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혼자 왔잖아. 이게 이제 제자로서는 전혀 순종을 못 하는 겁니다. 한 주간 동안에 모든 관심이 '이번 주일에 우리 서밋선교회 잔치가 벌어지는데 누구 하나 데려가지 않을까? 하나님 붙여 주실 거야.' 이런 믿음으로 기도했다면 반드시 사람을 붙였을 건데 그런 믿음으로 안 하고 '나 혼자 가서 예배드리지.' 그게 이제 실수인 거예요. 믿음을 바꿔야 돼요. 눈만 열리면 이 천국 잔치에 하나님 보내시기로 준비된 자가 분명히 있는데 하나님이 보내실 때는 그냥 못 보내요. 왜냐? 그냥 올 수 있는 상태가 못 되거든요. 불신자들은요 혼자 못 옵니다. 옆에서 조금만 건드려 주면요 준비된 사람은 탁 따라온다니까요. 그 쉬운 일을 예 우리가 지금 놓치고 있잖아요. 아주 중요한 말씀 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전에 청하였던 그 사람들은 하나도 내 잔치를 맛보지 못하리라. 주님의 초청을 거부한 사람들은 절대로 이 잔치에 올 수 없고 못 들어옵니다. 여러분이 분명히 초청했는데 그 초청에 응하지 않고 말을 안 듣는 사람은 그 사람은 영원한 기회를 놓쳐 버리는 거라니까. 여러분들은 기도하는 가운데 '아 오늘 저 사람에게 초청해야 되겠다.' 마음이 생기면요 하나님 하시는 그 말씀이거든요. 그래서 믿음으로 '아 오늘 우리 주일날에 저하고 같이 교회 한번 가실래요?' 아니면 뭐 여러 가지 상황에 따라 할 수 있잖아요. 그러면 준비된 사람은 아 고맙다고, 이렇게 초청해 주니까 감사하다고 이렇게 따라옵니다. 준비 안 된 사람은 거부하잖아요. 거부는 그 이상 자기 몫이 없는 겁니다. 오늘은 거부하더라도 다음에 또 초청이 임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시간표는 하나님께 맡겨야 되겠지요. 주님의 초청을 거부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이 잔치에 올 수 없고 못 들어온다. 하나님은 모두를 초대하지만 많은 이들이 각자의 핑계로 초대를 거절하고 그것은 구원을 못 받는 사람들입니다. 초대에 반응하고 초대에 응하는 사람만이 하나님 나라에 참여할 자격이 있고 구원받을 사람입니다. 그래서 어 초청하면 오기로 준비된 자가 분명히 있기 때문에 제자는 여기에 대해서 계속 기도하다가 틈틈이 준비된 자를 초대하고 한 주일이라는 것은요 시간이 엄청 깁니다. 이게 시간들 보면요 짧은 게 아니에요. 그 짧은, 그 긴 일주일 동안에 다 일을 하면서 이 하늘나라 잔치를 위해서 기도하고 '하나님 이번 주에 내가 초청할 사람이 누굽니까?' 탁 기도하면요 하나님이 한 사람 한 사람 붙이시는데 그 재미가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인생을 뒤바꿔 버려요. '아 하나님이 내 기도에 응답하셨네. 하나님이 사람을 붙여 주셨네.' 그 사람은요 그 직장에서 반드시 서밋이 됩니다. 영혼을 구원할 수준인데 하나님이 다 역사하잖아요. 영혼에 관심이 없으면 멸시와 천대가 끝이 없어요. 계속 일을 열심히 해도 하나님이 영적으로 기뻐하지 않으면요 사람들이 막 뒤집어져요. 예. 그런데 그런 환경이라 할지라도 혼란스러운 환경이라 할지라도 내 중심이 하나님 앞에서 바로 탁 섰어. '아, 나는 전도자야. 나는 이 일을 해야 돼. 이 일 때문에 하나님 보내셨어.' 이 믿음으로 딱 서 있으면요 나 하나 때문에 주위가 싹 바뀌어 버려요. 이런 것을 체험해야 진정한 전도자잖아요. 마지막으로 축복의 삶에는 항상 대가를 치러야 됩니다. 그것이 뭐냐? 희생과 헌신입니다. 예수님이 이런 말씀하셨어요. 이해가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부모, 처자, 형제, 자매,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라. 이 말이 됩니까? 무슨 뜻일까요? 수많은 무리가 함께 갈새 예수께서 돌이키사 이르시되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의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이 말이 무슨 말인가? 미워한다는 단어가 'Hate', 이 단어를 썼거든요. 어린아이가 한 번씩 다 울면서 하는 이야기가 있어요. "I hate you." 그 말에는요 미워한다는 의미겠습니까? 엄마가 자기 말을 안 들어. 자기 뜻을 몰라. 아무리 울어도 뜻을 몰라, 이해를 못 해요. 그럴 때 이 아이가 하는 이야기가 "I hate you"라 그럽니다, 울면서. 그 의미로 지금 하신 겁니다. 이 말은 선후의 문제잖아요. 가족들과 자신의 목숨을 미워해야 한다는 그런 의미가 아니고 무엇이 더 우선이고 무엇이 더 중요하고 선과 후의 문제입니다. 나는 이것을 원하는데 아이들이 우는 것처럼 주님은 분명히 이것을 원하고 명령하시는데 그 명령, 그 깊은 뜻을 모르고 자꾸 다른 육적인 것에 마음이 가니까 예수님이 우리에게 "I hate you"라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내가 너를 살리고 너를 구원하고 너를 인도하고 그렇게 참고 기다리고 훈련한 이유가 여기 있는데 왜 이것은 모르냐 이거예요. 예수님이 성령께서 눈물 흘리면서 어린아이 같잖아요. 우리 성령님은 너무 순진하고 능력이 한이 없으시지만 그 깊은 마음은 어린아이와 같이 얼마나 순박한지 모르거든요. 미워할 줄 모르는 그분이 "I hate you"라고 말할 때는 그 깊은 그분의 음성을 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당시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요 사회적, 경제적, 가족적 관계에서 오는 압력과 갈등이 엄청 많은데 네가 이것을 감수할 자세가 되어 있느냐? 감당하라는 것이 아니라 감당할 자세가 되어 있느냐? 힘은 주시는데 하나님이 힘 다 주셔요. 그런데 그 자세를 갖고 있느냐? 그 의미로 지금 미움이라는 단어를 쓰신 겁니다. 지금 때로는 목숨을 걸고 신앙을 지켜야 하는 그 박해와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는 이런 의미지요. 중요한 순간은 그렇잖아요, 여러분들. 정말 중요한 순간이 오면요 부모는 자녀가 위험을 당하면 뛰어듭니다. 그거는 이제 기본이잖아요, 당연한 것이 아니라. 이 축복의 삶에는 항상 희생이 따르고 대가를 치른다. 왜? 중요하니까. 가장 중요하니까 가장 중요한 거기에는 이런 것이 따라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하나님이 그 자리, 그 현장에 보냈는데 왜 어려움이 없겠습니까? 자기가 그것을 피하고 다른 데로 가 보세요. 그 십자가 또 있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그 감당을 해야 다음에 제2가 열리는데 그것을 피해 버리면 그 십자가는 계속 따라다녀요. 거기서 못 벗어나는 거예요. 이게 한 번 꺾어 버리면, 흑암을 한 번 꺾어 버리면 그다음에 새로운 문이 열리게 돼 있어요. 내게 주어진 여건을 확인하고 내가 가진 것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이래야 한다는 겁니다. 그 말씀을 뭐라 하느냐? 망대 비유를 하셨어요. 예수님께서 너희 중에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진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까지에 족할는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계산하지 않겠느냐? 그렇게 아니하여 그 기초만 쌓고 능히 이루지 못하면 보는 자가 다 비웃어 이르되 이 사람이 공사를 시작하고 능히 이루지 못하였다 하리라. 비난합니다, 영광 가리는 거예요. 무조건이라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여건에서 내가 최선을 다하지만 내가 감당할 수 있는 희생인가 이것을 확인하고 확신이 찰 때에 딱 감당하라는 거예요. 이게 얼마나 지혜롭습니까? 무조건 일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기도하고 성령 인도를 받으면요 그때그때마다 이 지혜를 주시는 거예요. 나의 한계를 알고 나는 이선까지는 감당할 수 있다, 그 이상은 못 한다, 그래 가지고 딱 감당할 수 있는 것을 완성함으로 인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이게 이제 하나의 그 현장에서 제자로서의 어떤 지혜입니다, 이게. 야 저는 이 말씀 보면서요 예수님이요 얼마나 치밀하고 정확하고 그렇게 우리에게 인도하는 거예요. 말씀하시는 것 보면요. 그런데 그런 모든 지혜가 어디서 나왔느냐 하면은 자기를 비판하는 그 바리새인들의 그 환경 속에서 모든 지략을 찾고 그런 말씀 주시고 그리고 제자들에게 탁 말씀을 던져 주는 거예요. 예수님 참 지금하고 비슷해요. 우리 목사님이 하시는 그 말씀 어른 보면요 다 그렇거든요. 문제를 통해서 차근차근 하면서 지금까지 왔잖아요. 대부분 말씀 흐름대로 한다 그러면서 문제 따라가 버려요. 문제만 터지면 그냥 흔들려 버리고 문제만 나오면 거기서 답이 나와야 되는데 막 거기 빠져 버려요. 왜냐? 이 전체적인 그림이 없다 보니까 VDIP가 분명하지 않으면 프랙티스까지 못 가요. 언약이 분명하면요 기본이 탄탄하고 망대가 든든하면 이게 다 옆에 다 나타납니다, 예. 다 보인다는, 그래서 보인다는 말까지 나오는 거 아닙니까? 내가 있는 것으로 능히 감당할 수 있는지 치밀함과 전략이 반드시 필요한데 또 하시는 말씀이 예수님이 전쟁을 또 비유하셨어요. 어떤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갈 때에 자기가 가진 것은 1만 명이야. 그런데 상대방은 2만 명인 거고요. 그러면 내 1만 명으로 과연 저 2만 명을 내가 감당할 수 있겠나? 판단하고 계산하라는 거예요. 그런데 자신이 있으면 딱 싸우지만 자신이 없다면 포기하고 빨리 사신을 보내서 화친을 하지 않느냐. 그러면서 내게 있는 것으로 능히 감당할 수 있는지 자신을 보고 치밀하고 전략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거예요. 복음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어 성경에 단순하게 뭐 소유를 버리라 그 내용 들어가면 그게 아니잖아요. 모든 주님을 따르는 데 있어서 모든 소유를 버리라, 이 의미가 뭐냐니까 단순히 가난해지라는 의미가 아니고 소유에 대한 그 집착과 의존을 버리는 거예요. 그리고 예수님이 삶의 주인이 제대로 되도록 내 삶의 중심을 내어드리라 이거예요. 내 중심을 내어드리라. 그리고 재물이나 지위, 인간관계보다 예수님을 과연 네가 우선에 두고 있나 말이야. 이것을 어 말씀하시기 위해서 아주 극단적인 단어를 하나님이 쓰신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참 중요한 것은 제자의 삶은 희생과 헌신의 삶이 굉장히 중요하다. 그게 바로 이제 군중과 제자의 차이점이죠. 군중들은요 희생 안 합니다. 할 이유가 없지요. 그런데 제자는요 그런 거 마다하지 않거든요. 일하다가도 어떤 희생할 일 있으면요 생명 걸고 합니다. 왜냐? 주인이니까, 제자니까, 하나님이 나를 여기 파송했다고 믿으니까 그 믿음으로 탁 일하면서요 전체를 싹 이끌어가 버리는 거예요. 그러니까 나중 되면요 인정합니다. 야 역시 이게 제자입니다. 이게 축복의 길입니다. 여러분 성공하는 사람들은 다 이런 바탕 속에 있거든요. 그런 것을 기본으로 다지면 하나님이 아시고요 부어 주십니다. 결론적으로. 그래서 바른 중심을 가져야 됩니다. 그것은 사랑과 긍휼의 마음입니다. 그리고 기본 자세를 탄탄히 가져야 됩니다. 그것은 가장 낮은 자리에서 온전히 섬기는 거지요. 그리고 에 순종입니다. 제자의 순종은 바로 하늘나라 잔치에 채우고 사람을 이렇게 초청하는 거지요. 그리고 이런 엄청난 축복의 삶에는 항상 대가를 치르기 때문에 희생과 헌신을 통해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 너무 귀한 발걸음입니다. 이런 축복을 누리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주님의 은혜를 감사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길, 이런 축복의 길을 걸어가게 하신 주님, 예수님이 하신 그 깊은 의미를 한 주간 동안에 누가복음 14장의 말씀을 읽으면서 이 말씀에 구체화된 그 삶을 나에게 적용해 보고 말씀에 비추어서 돌이킬 것 돌이키고 기본을 다지고 준비하는 저희들 될 수 있도록 주께서 축복하여 주옵소서. 감사드리옵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세상에서 가장 가치있는 길 (눅 14:1-14) 20250803 주일오전예배 서밋선교교회 / 설교 박한식목사